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(문단 편집) === 자동차 업계의 상황 === 오일쇼크 이전인 1970년대 초에도 자동차 업계는 이미 과잉 투자로 인한 가동률 저하가 시작되었다. [[http://ksme.or.kr/UploadData/Editor/EmBody/201212/1C49A0425A004B5B83604393957F5023.pdf|#]] [[아시아자동차]]가 원래 [[기아]]와는 별개 기업이었으나 자회사가 된 것도 이 시점이었다. 이 와중에도 각 자동차 회사들은 모델 생산 범위를 전 범위의 차종으로 넓히기 시작했는데, 이러면서 발생한 각 차종별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. 뒤에 나오지만 퇴출된 모델들은 이러한 약점들을 안고 있었다. * 승용차 : 당시 우리나라의 승용차 시장을 보면, 당시의 국민소득 상황으로 소형 승용차들은 수요가 많지 않았고, 중대형급 차가 당시 승용차 시장의 주류였다. 승용차 시장에선 기아자동차가 꽤 불리했다. 문제는 기아자동차의 중대형 승용차들은 라이센스 비용같은 이유로 인해 유독 비싸서 가성비에 문제가 있었던 상황. * 지프 : 당시 지프는 신진자동차(현 [[쌍용자동차]])가 M38A1 기반인 CJ-5를 라이센스 받아서 단독으로 생산하던 상황이었다. 문제는 이 모델을 기반으로 최초로 국산화를 시도했던 [[¼톤 트럭]] [[K-100]]에서 문제점이 너무 많이 발견되어 M151 기반으로 [[K-111]]을 다시 개발하게 되었다. 이 와중에 [[K-311]], [[K-511]]이 개발되면서 군용차량을 아시아자동차(현 [[기아]]) 공장에서 생산하는걸로 몰아버렸다. * 1~5톤 트럭 및 버스 : 트럭쪽은 기아가 [[삼륜차]]를 생산하던 시절부터 국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. 게다가 [[기아 타이탄]]과 [[기아 복서]] 이후로 시장을 더더욱 굳혔다. [[이스즈 엘프|새한 엘프]]가 1.4톤, 2.5톤, 3톤 급으로 그럭저럭 판매되고 있었으나 후발주자의 불리함으로 기아 타이탄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였고(그래도 한때나마 타이탄 판매량을 뛰어넘은 적은 있다.), [[현대 바이슨]]은 고유모델이어서 당시의 낮은 기술력으로 인한 조잡함으로 경쟁에서 불리했다.[* 하필 자동차용으로는 ([[고속도로/대한민국|고속도로]]가 늘어나던 1980년대 기준에서)다소 부적합한 [[퍼킨스]] 엔진을 도입한것도 한몫.] 버스의 경우 2000년대와는 다르게 [[마을버스]]와 소형 [[통학버스]]의 수요가 거의 없었고, 자가용, 전세버스 시장은 대형버스들이 장악했다. 심지어 [[기아 코스모스]] 급의 중형버스들은 [[대중교통]]용의 계보가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73102400099206001&editNo=1&printCount=1&publishDate=1973-10-24&officeId=00009&pageNo=6&printNo=2352&publishType=00020|한번 끊어진 적]]이 있던 상황.[* 당연할 수 밖에 없는게, 60~80년대 시점의 버스 수요를 오늘날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된다. 대도시들은 전철망이 미비해서 버스들이 가축수송을 하던 시절이고, 농어촌버스는 저 시점이나 지금이나 배차간격이 길고, 농민들이 5일장을 가러 버스에 대형 짐을 싣던 시절이다. 울릉도 같이 길 자체가 좁아서 답이 없는 곳이 아니면 중형버스가 잘 팔릴리가 없었다. 당장에 [[아시아자동차]]의 [[기아 AM버스|AM808]]도 [[부산광역시|부산]] [[금정산성]]이나 [[청주시|청주]] [[상당산성]] 같은 특수한 지형을 운행하는 곳을 제외하면 노선버스로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